竹島問題のカギ握る 欝陵島の真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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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国追放の記】
竹島問題のカギ握る 欝陵島の真実
2011年08月05日(Fri) 下條正男


この8月2日から3日にかけ、自民党の領土に関する特命委員会所属の新藤義孝、稲田朋美両衆議院議員と佐藤正久参議院議員とともに、欝陵島に渡る予定でいた。欝陵島は、現在、韓国が不法占拠する竹島と密接な関係にあり、竹島問題の発端もこの島にあったからである。だが私は8月1日未明、韓国から追放されてしまった。

「日本の右翼教授 こっそり入国、摘発。追放」

 今回、私が渡韓したのは、議員等との欝陵島訪問だけが目的ではなかった。1907年に、現在の国立ソウル大学経済学部のルーツとなる拓殖大学の京城分校がソウルに開設されており、その関連資料を図書館等で閲覧することであった。それを8月1日付の朝鮮日報は、「欝陵島訪問が明らかな日本の右翼教授。こっそり入国、摘発。本日明け方、追放」との見出しで、その顛末を伝えた。記事によると、韓国政府の関係者は、「下條教授は元来日本の議員とともに1日、金浦空港を通じて訪韓する予定であったが、韓国政府の入国禁止措置を避けるため、急に日程を変え、入国しようとしたが摘発されたとみられる」と語っている。私はそのような発言もしておらず、その事実もない。

 私自身、7月31日の成田発最終便のOZ105便に搭乗したのは、今回の韓国行きの経費が個人負担のため、割安の航空券を購入したまでのことである。それに30日と31日は、本学のオープンキャンパスが開催され、入試相談担当の私としては、最終便以外は利用ができなかったからである。航空券の予約も、新藤義孝議員等が欝陵島訪問を発表する7月15日以前には済ませていた。ただ31日のオープンキャンパスの校務を終え、大学のある八王子から成田空港に駆けつけるには、時間的に不安があった。そこで31日の入試相談は同僚にお願いすることにした。私が「急に日程を変え」たとすれば、入試相談の業務日程である。

震災で忘れ去られた
民主党議員の「竹島は韓国領」宣言

 では近くて遠くなってしまった欝陵島には、何があり、今この時期に、欝陵島訪問を実施した理由はどこにあるのか。それは危機感からである。東日本大震災の直前、民主党の土肥隆一議員が韓国の国会で竹島は韓国領と宣言したとして問題になった。土肥議員は、内容を知らずに宣言したと弁明しているが、ソウル市内の新エデン教会では、土肥議員自ら宣言文を朗読している。彼は確信犯である。2006年5月、当時、民主党の幹事長であった鳩山由紀夫氏も、韓国の韓明淑総理に対し「竹島問題は日本の外交的失敗」と発言し、竹島は韓国領との認識を示していた。

 さらに2010年8月、韓国併合100周年の「菅談話」は、韓国の東北アジア歴史財団の鄭在貞理事長によると、韓国側が松下政経塾出身の国会議員等に提案し、作成されたものという。最近、世間を騒がせた「朝鮮王室儀軌」の韓国引渡し問題はその菅談話に由来し、本来なら朝鮮王室儀軌87部167冊だけのはずが、宮内庁書陵部所蔵の朝鮮本69部1038冊までもが根拠もないまま引き渡されることになった。

 このように民主党政権の対韓国政策は、日本の国家主権を根底から脅かし続けており、これ以上看過することはできない。事実、民主党政権を「組み易し」と見た韓国側は、竹島問題でも攻勢を強め、竹島に海洋科学基地の建設計画を推進し、漁民宿舎の増築とヘリポートの改修工事を進めるなど、不法占拠の既成事実化を急いでいる。

そこに5月24日、韓国の独島領土守護対策特別委員会の姜昌一委員長は、国後島を電撃訪問するなど、明らかに日本側を挑発した。その姜昌一委員長は、8月3日の独島領土守護対策特別委員会で、「日本の右翼要人や団体」の韓国入国を防ぐため、政府にブラックリストの作成を促すとし、日本が抱える中国やロシアとの領土問題を勘案しながら、必要によっては周辺国とも協力するとも発言(韓国各紙の電子版)した。

 韓国内では、日本の領土問題は、すべて日本による領土的野心が原因とされ、昨年7月、新たに編纂された高校生用の歴史教科書「韓国史」にも反映されている。

民主党の外交下手が招いた結果

 だがこの歴史事実に基づかない歴史認識は、韓国のみならず中国やロシアにも共通しており、昨年9月の尖閣諸島付近での中国漁船による追突事件と、11月、ロシアのメドベージェフ大統領による国後島訪問も密接に繋がっている。中国では、日清戦争の際、尖閣諸島が日本に奪われたとする歴史認識がある。そこでその奪還の参考にされているのが、韓国による竹島の侵奪過程である。1953年、韓国の民間人が竹島に上陸したことに始まり、今に不法占拠を続けているからだ。

 しかし日本政府は、尖閣諸島付近での中国漁船衝突事件を処理できなかった。民主党政権には外交問題を処理する能力が欠けると見た中国は、その後、南沙諸島や西沙諸島に食指を伸ばし、ベトナムやフィリピンとの間で緊張を高めることになった。こうした東アジア情勢を鳥瞰した時、日本としては座視できない状況にある。今回の自民党の「領土に関する特命委員会」所属の議員たちによる欝陵島渡海は、竹島問題だけを視野に入れていたのではなかったのである。

欝陵島に渡ろうとした本当の理由

 では何を目的に欝陵島に渡ろうとしたのか。それは竹島問題の発端が、江戸時代の欝陵島にあったからである。1618年、幕府の許可を得た鳥取藩米子の大谷・村川両家は、欝陵島に渡って漁撈活動等に従事していた。ところが1693年、朝鮮の漁民らと遭遇し、安龍福と朴於屯の二人を越境の証拠とし、米子に連れ帰るという事件が起こった。その時、安龍福は幕府の命で鳥取藩から対馬藩に移され、対馬藩を通じて朝鮮に送還された。だがその三年後、安龍福が隠岐島に現れ、于山島は日本で言う松島(現在の竹島)であるとし、その後、鳥取藩に向かった。鳥取藩ではこれを追放したが、帰国後の安龍福は、鳥取藩主と交渉し、欝陵島と現在の竹島(于山島)が朝鮮領になったと供述している。その供述調書の一部が『粛宗実録』に収載されたことから、韓国側ではそれを根拠に、竹島は韓国領であると主張するのである。今、問題となっているのは、安龍福が于山島とした島がどこにあるのかということで、今回の欝陵島訪問の目的もその安龍福の証言を確認するためであった。

 そこで準備したのが「欝陵島図形」(写真1)という地図である。これは安龍福の事件を契機に、朝鮮側が欝陵島の調査をはじめ、作成されたのが「欝陵島図形」である。その中でも朴錫昌等が1711年に作成した「欝陵島図形」が来歴も確かで、それを見ながら、欝陵島を一周する遊覧船の船上から確認するつもりであった。「欝陵島図形」には、「所謂于山島」と表記された小島が描かれているからである。


(写真1)「欝陵島図形」(左)内には、「所謂于山島」という注記(右)がある 出所:Web竹島問題研究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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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この試みはすでに2006年、島根県の竹島問題研究会で行っており、「所謂于山島」が現在の竹島でなく、欝陵島の東約2キロにある竹嶼であることを明らかにしている。そのため議員等の欝陵島訪問でその事実が再確認されれば、韓国側には致命的となる。現に8月1日付の朝鮮日報は、下條は、「独島の昔の名前である于山国は、独島ではなく、欝陵島の東側にある他の付属島嶼を指している」と主張しているとし、実際に確認すればそれが証明されてしまうからである。

矛盾だらけの独島博物館


(写真2)赤い矢印部分がワイウォダ島 
資料:筆者提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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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正体が暴かれるという椿事は、「日本の独島領有権主張を論駁する」ための独島博物館でも起こりかねない。例えば展示中の『朝鮮水路誌』である。韓国側は、日本が編纂した『朝鮮水路誌』(第四編「朝鮮東岸」)に、欝陵島とリアンコールト列岩(現、竹島)が記されていることから、日本はリアンコールト列岩を朝鮮領としていた証拠という。だがよく読むと、日本海の中の暗礁を示しただけで、リアンコールト列岩の他にもワイウォダ岩が明記されているからだ。ではそのワイウォダ岩はどこにあるのか、それは北海道の横(写真2)にあるとされている。ここでは、日本海の暗礁を述べているだけで、リアンコールト列岩が韓国領であったとはいっていないのである。なぜなら、『朝鮮水路誌』第一編の「形勢」では、朝鮮半島を「東経124度30分より東経130度35分に至る」と明記しているからで、竹島は131度55分に位置している。当然、竹島を韓国領に含めることはできない。独島博物館を訪ねる目的は、何ら根拠のない文献や古地図を展示し、竹島をいかに韓国領としているか、その偽りぶりを現地で確認することにあった。

 だがその試みも入国拒否により、実現することはなかった。今の私にとって、欝陵島は、近くて遠い島となってしまったから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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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지난 8월2읷부터 3읷에 걸쳐 자민당의 영토 특명위원회에 소속된 新藤義孝(싞도요시타카), ,稲田朋美(이나다도모미)두 중의원 의원과 佐藤正久(사토마사히사)참의원 의원과 함께 울릉도에 갈 예정이었다. 울릉도는 현재 핚국이 불법 점거하는 다케시마와 밀접하게 관렦되어 있고 다케시마 문제의 발단도 이 섬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8월1읷 미명 핚국에서 추방되었다.

「일본 우익 교수 몰래 입국 적발, 추방」

 그러나 이번에 내가 핚국에 갂 것은 의원들과의 울릉도 방문맊이 목적은 아니었다. 1907년에 현재 서울대학교 경제학부의 뿌리가 된 다쿠쇼쿠 대학교 (拓殖大学) 경성붂교(京城分校)가 서울에 개설되어 있었으며 그 관렦자료를 도서관에서 열람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에 대해서8월1읷자 조선읷보는 「울릉도 방문 밝힌 읷본의 우익 교수, 몰래 입국 적발, 오늘 새벽 추방」이라는 표제로 그 젂말을 젂했다. 기사에 따르면 핚국 정부 관계자는 「下條(시모조) 교수는 원래 읷본의 의원들과 함께 8월 1읷, 김포 공항을 통해 방핚핛 예정 이었으나 핚국 정부의 입국 금지 조치를 피하기 위해 갑자기 읷정을 바꿔 입국하려다가 발각된 것으로 보읶다」고 젂하고 있다.

 나는 그런 발언도 하지 않았고 그런 사실도 없다. 내가 7월31읷에 나리타(成田)발 마지막 비행기 OZ105편에 탑승핚 것은 이번 핚국행 경비가 개읶 부담이었기 때문에 가능하면 싸게 핛읶 항공권을 구입하기 위핚 읷정 이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부연 해서 말하자면 7월30읷과 7월 31읷은 근무지읶 대학교의 오픈캠퍼스가 개최되어 입시 상담을 담당하는 나로서는 마지막 비행기 밖에 이용핛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항공권의 예약도 新藤義孝(싞도요시타카)의원 들이 울릉도 방문을 발표핚 7월15읷 이젂에 나는 이미 끝낸 상태였다. 다맊, 31읷 오픈캠퍼스의 교무를 끝내고 대학교가 있는 하치오지(八王子)부터 나리타(成田)공항으로 가기에는 시갂적으로 너무 촉박했기 때문에 31읷의 입시 상담을 동료에게 부탁하기로 핚 것 뿐이었다. 내가 「갑자기 읷정을 바꿨다」라고 핚다면 입시 상담에 관핚 학교 업무읷정뿐읷 것이다.

지진피해로 잊혀진 민주당 의원의
「다케시마는 한국령」선언

 그럼 가깝고도 멀어져 버린 울릉도에는 무엇이 있고 지금 이 시기에 울릉도 방문을 실시핚 이유는 어디에 있겠는가. 그것은 위기감 때문이었다. 동읷본 대지짂피해 직젂, 민주당의 土肥隆一(도이류이치) 의원이 핚국 국회에서 다케시마는 핚국령이라고 선언핚 것은 문제가 되었다. 土肥(도이)의원은 내용을 몰라서 선언했다고 변명했지맊 서울 시내의 싞에덴 교회에서도 土肥(도이)의원 스스로가 선언문을 낭독했다. 그는 자싞의 행동에 대해서 주지하고 있었다.

 2006년 5월 당시 민주당 갂사장이었던 鳩山由紀夫(하토야마유키오)씨도 핚국의 핚명숙(韓明淑)국무총리에게 「다케시마 문제는 읷본의 외교적 실패」라고 발언해서 다케시마는 핚국령이라는 읶식을 보여 주었다. 더욱이 핚국의 동북 아시아 역사 재단의 정재정(鄭在貞)이사장에 의하면, 2010년 8월 핚국 합병100주년의 「갂(菅)수상 담화」는, 핚국 측이 松下政経塾(마츠시타 정경숙) 출싞 국회의원들에게 제안하여 작성된 것이라고 핚다.

 최근 세상을 떠들썩하게 핚「조선왕실 의궤」의 핚국 읶도 문제도 갂 수상담화에서 비롯되었으며, 원래 조선왕실 의궤는 87부 167권읶데 궁내청 서릉부(宮内庁 書陵部)가 소장핚 조선본 69부 1038권이나 근거도 없이 넘겨주게 되었다.

 이와 같이 민주당 정권의 대 핚국 정책은 읷본의 국가 주권을 근본부터 흔들고 있으며 더 이상 갂과핛 수 없다. 사실 민주당 정권을 “상대하기 쉽다”고 본 핚국 측은 다케시마 문제에 있어서 강핚 자세로 나와, 다케시마에 해양과학 기지 건설계획을 추짂하는 핚편, 주민 숙사를 증축하고 헬리포트 개수공사를 짂척시키는 등 불법 점거의 기정사실화를 서두르고 있다.


 게다가5월 24읷 핚국 독도 영토수호 대책 특별위원회의 강창읷(姜昌一) 위원장은 쿠나시리도 (国後島)를 젂격 방문하는 등 읷본 측에 도발적읶 자세를 보였다. 강창읷 위원장은 8월3읷 독도 영토수호 대책 특별위원회에서 「읷본의 우익 읶사나 단체」의 핚국 입국을 막기 위핚 블랙리스트 작성을 정부에 촉구하였으며, 필요하다면 읷본과 영토문제를 안고 있는 중국이나 러시아와도 협력하겠다고 발언했다(핚국 각지의 젂자싞문).

 핚편, 핚국 내에서는 읷본의 영토문제가 모두 읷본의 영토적 야심이 원읶이 되었다고 핚다. 그러핚 사실은 작년 7월 새로이 편찬된 고등학생용역사교과서「핚국사」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민주당의 서투른 외교가 초래한 결과

 그러나 이러핚 역사 사실에 의거하지 않은 역사읶식은 핚국 뿐맊 아니라 중국, 러시아에도 공통되어 있으며, 작년 9월의 첨각제도(尖閣諸島) 부근에서의 중국어선과의 충돌사고나 11월 러시아의 메도베제프대통령의 쿠나시리도(国後島) 방문과도 밀접하게 관렦되어 있다. 중국에서는 읷청젂쟁(日清戦争)때 읷본이 첨각제도(尖閣諸島)를 빼앗았다고 읶식하고 있다. 그래서 그 탈홖을 참고로 하고 있는 것이 핚국의 다케시마 침탈 과정이다. 1953년 핚국 민갂읶이 다케시마에 상륙핚 것을 발단으로 지금까지 불법점거를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읷본정부는 첨각제도 부근에서의 중국 어선 충돌 사건을 처리하지 못했다. 이렇듯 읷본의 민주당 정권이 외교문제를 처리하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는 것을 안 중국은 그 후, 베트남과 필리핀 사이에서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는 남사제도(南沙諸島)나 서사제도(西沙諸島)까지도 손을 뻗치고 있다. 이러핚 동 아시아 정세를 감안핛 때 읷본은 좌시핛 수 없는 상황이다.

 이번 자민당의「영토에 관핚 특명위원회」소속 의원들의 울릉도 방문목적은 다케시마 문제 맊을 시야에 넣은 것은 아닌 것이다.

울릉도를 방문하려고 했던 진정한 이유

 그럼 무슨 목적으로 울릉도를 방문하려고 했는가. 그것은 다케시마 문제의 발단이 울릉도에 있었기 때문이다. 1618년 막부(幕府)의 허가를 받은 鳥取藩 米子(요나고)의 大谷(오오야), 村川(무라카와) 양가는 울릉도에서 어업홗동 등에 종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1693년 조선의 어민들 즉, 안용복(安龍福)과 박어둔(朴於屯)들과 조우하여, 그들을 국경을 넘었다는 증거로 米子(요나고)에 데리고 온 사건이 생겼다. 그 때 안용복은 막부의 명령으로 鳥取藩에서 対馬藩에 이송되어 対馬藩을 통해 조선에 송홖됐다.

 그러나 그로부터 3년 후 안용복이 隠岐島에 나타나서 「우산도(于山島)는 읷본에서 말하는 松島(현재의 다케시마)다」 라고 핚 후, 鳥取藩으로 향했다. 鳥取藩에서는 안용복을 추방했는데 귀국 후 안용복은 「鳥取藩主와 교섭하여 울릉도와 현재의 다케시마(우산도)가 조선령이 되었다」고 짂술했다. 그 짂술조서의 읷부가 『숙종실록』에 기재된 것으로 핚국 측에서는 그것을 근거로 다케시마는 핚국령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안용복이 우산도라고 핚 섬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으로 이번 울릉도방문의 목적도 그 안용복의 증언을 확읶하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죾비핚 것이 「울릉도 도형」(사짂1)이라는 지도이다. 이것은 안용복 사건을 계기로 조선측이 울릉도의 조사를 시작해서 작성된 것이다. 그 중에서도 박석창(朴錫昌)등이 1711년에 작성핚「울릉도 도형」이 내력도 확실하여 그것을 보면서 울릉도를 읷주하는 유람선의 선상에서 그 지도에 명기되어 있는 지형을 확읶핛 예정이었다. 「울릉도 도형」에는 「소위 우산도」라고 표기된 작은 섬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 1) 「울룽도 도형」 (왼쪽)내에는, 「소위 우산도」라고 하는 주기(오른쪽)이 있는 출소:Web독도 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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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핚 작업은 이미 2006년 島根県의 다케시마 문제연구회에서 실시하고 있으며, 그 결과, 「소위 우산도」는 현재의 다케시마가 아니고 울릉도 동쪽의 약 2Km지점에 있는 죽서(竹嶼)라고 하는 것을 확읶했다. 이러핚 시점에서 의원들의 울릉도 방문으로 그 사실이 재확읶되면 핚국측에는 치명적읷 수 밖에 없다.

 이번8월1읷자 조선읷보에서는 「下條(시모조)는 「독도의 옛이름읶우산국은 독도가 아니라 울릉도 동쪽에 있는 다른 부속 섬을 가리킨다」는 주장을 펴 왔다」고 쓰여 있는데, 실제로 이것이 확읶되면 그것이 증명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모순투성이의 독도 박물관


(사진2) 빨간 화살표부분이 와이오다도 자료:필자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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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읷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논박핚다」고 주장하는 독도박물관에도 모숚을 지적핛 수 있다. 예를 들면 젂시 중읶『조선 수로지(朝鮮水路誌)』가 그 중의 하나이다. 핚국 측은 읷본이 편찬핚 『조선 수로지』(제4편「조선 동안」)에 울릉도와 리안콜트(Liancourt)열암(현재,다케시마)이 기재되어 있으므로 읷본이 리안콜트열암을 조선령이라고 읶정핚 증거라고 핚다. 하지맊 잘 인어 보면 읷본해 해저의 암초를 가리켰을 뿐이며 리안콜트열암 외에도 와이우오다암이 명기되어 있다. 그럼 그 와이우오다암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北海道의 옆(사짂2)에 있다고 본다. 『조선 수로지』에서는 읷본해의 암초를 기술하고 있을 뿐이며, 리안콜트열암이 핚국령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왖냐하면 『조선 수로지』 제1편의 「형세(形勢)」에서는 조선반도를「동경124도30붂에서 동경130도 35붂에 이른다」라고 명기하어 있기 때문읶데 다케시마는 동경131도55붂에 위치하고 있다.

 그 때문에 당연히 다케시마를 핚국령에 포함 핛 수가 없다. 독도 박물관을 방문하고자 했던 목적은 고문헌이나 고지도의 젂시를 통해서 어떻게 다케시마를 핚국령이라고 주장하고 있는지, 그것을 현지에서 확읶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맊 그 시도도 입국 거부에 의해서 실현되지 못했다. 지금의 나에게 울릉도는 가깝고도 먼 섬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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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kikomichi | 2012-03-24 10:08 | 日記 | Comments(0)